한국전통문화진흥원

사랑방이야기

까떼망코 호수에서

작성자 : 관리자 조회 40

첨부파일 :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등록시간 : 2021-01-08 03:06:36


까떼망코 호수에서

  • 이장열 (사)한국전통문화진흥원 이사장
  • 승인 2020.04.16 06:53
  • 댓글 0



오래전 철없던 유학시절, 지금까지도 남아있는 가슴시린 기억 하나가 있다. 그것은 어쩌면 지나쳐버릴 일상사의 하나일 수도 있다. 그때는 자신감과 모험심으로 혼자서 고물차를 몰고 겁도 없이 세상을 누비고 다니던 젊은 시절이었다. 여행은 유람만이 목적은 아니었고 인디오문화유적지인 올메까, 똘떼까, 아스떼까, 마야유적지와 1905년에 멕시코에 상륙한 대한제국인 1033명의 정착지인 메리다에 대한 현장답사가 주목적이었다. 동행한 일행도 없었고 안내자도 없이 혼자서 지도를 보고 구상한 여행길이었다. 신학기(가을) 등록을 마친후 학기가 시작되기 전까지 약 20여일의 자유시간이 있었기에 갑자기 여행을 계획한 것이었다. 7월 12일 아침 6시 25분에 나는 고물자동차 발리안트 볼라레(6기통)를 몰고 멕시코 집을 출발하였다. 처음은 정동쪽으로 카리브해의 베라크루스로 갔고 이윽고 다시 남동쪽으로 꼬앗사꼬알꼬스, 아까유깐을 지나 유까탄반도의 메리다, 칫첸잇사, 욱스말, 깐꾼, 이슬라 무헤레스(여인도)를 거처 체뚜말까지 갔었다. 그리고 돌아올 때는 태평양변의 와하까쪽으로 둘러서 왔다. 도합 우리 거리로 만리(萬里)가 넘는 5,000㎞ 가까이를 미친 듯이 쏘다녔던 것이다. 너무 거리가 멀어서 지겨움을 느낄 때도, 또 아찔한 순간들도 있었는데 다행히 운이 좋았다. 여행 중에 많은 것을 보고 배웠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기도 했으나 이제는 그저 아득한 기억 속에서만 희끄무레하게 남아있을 뿐이다. 다만, 까떼망코호수에서의 기억은 지금까지도 생생하다. 그때 나는 호수변에서 차를 세우고 쉬고 있는데 어디서 왔는지 인디안할머니 한분이 다가와서 내 얼굴을 보면서 주름진 손을 내밀었다. 순간 나는 의식적으로 외면해버렸다. 가는 곳마다 여행객들에게 손을 내미는 원주민들이 많았다. 그 할머니는 아쉽고 약간 원망스런 표정을 지으며 곧바로 뒤돌아섰다. 그리고 나는 호수면과 둑방 위에 서 있는 수양버들 가지들이 바람에 나부끼고 있는 모습을 구경하고 있었다. 바람이 있어서 날씨는 약간 쌀쌀했다. 그런데 조금 후에 불편한 걸음으로 천천히 둑방길을 걸어가는 한 노인이 있었는데 자세히 보니 바로 그 할머니였다. 실망한 할머니가 어디로 가는 것인지? 굶고 있지는 않은지? 잘 곳은 있는지? 갑자기 걱정이 되었다. 순간, 뒤따라 가볼까 하는 생각도 있었으나 이미 저만치 가 버려서 방법이 없었다. 바람에 부대끼는 수양버들의 가지처럼 그 할머니의 긴 머리칼도 바람에 흩날리고 있었다. 그 할머니는 그렇게 뒷모습을 남긴채 천천히 사라져 갔다. “아- 너무 미안하다. 내가 잘못 했구나” 하면서 내미는 그 손을 거절했던 일이 후회가 되었다. 그리고 그 할머니가 사라진 후에도 그 뒷모습의 영상은 사라지지 않았다. 사람이 한 평생을 살아가면서 수많은 사람을 만나고 또 헤어진다. 그 사람들 중에서 언제 만나도 반가운 사람이 있고 가끔 만나도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있다. 한 번의 만남으로 끝나버리는 사람도 있고 끈질긴 인연으로 만남이 지속되는 관계도 있다. 그러나 결국은 헤어지게 되어있다. 만날 때 마음은 반갑지만 아쉬움이 없는 헤어짐도 있다. 심지어 만남 자체가 불행의 시작인 경우도 있다. 얕은꾀로 인연 있는 사람에게 실망감이나 배신감을 주거나 본질적으로 마음이 음흉한 사람이 아니라면 어렵고 가난한자가 내미는 도움의 손길을 거절치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까떼망코 호수에서 잠간 마주친 그 할머니와의 짧은 대면! 어쩌면 기회는 한번 밖에 주어지지 않고 지난 후에는 후회가 뒤따름을 비로소 느낄수 있었다. 수 십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내 마음은 긴 머리칼을 바람에 날리며 천천히 둑방길을 걸어가는 그 할머니의 뒷모습이, 그 손과 아쉬운 듯한 그 얼굴과 오버랩되어 그 시각에 멈춰 서 있다. 그 할머니가 아직도 바람 부는 그 호수변에서 살아 있을까?